로그인

검색

[인터뷰] 서사무엘 (Samuel Seo)

title: [회원구입불가]LE_Magazine2018.03.16 13:50추천수 10댓글 12

thumbnail.jpg


'앨범 소개해주세요.', '이 곡은 어떤 곡인가요?', '만들면서 에피소드는 없었나요?', '앞으로의 계획은요?' 늘 인터뷰에 기틀이 되는 질문이라지만, 썩 영혼을 담지는 않은 채로 그 말들을 반복적으로 뱉는 질문자인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곤 하면 진절머리가 난다.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하도 많이 주고받은 탓에 어쩌면 따분하게 묻고 답하는 그 기시감 어린 장면들. 그럼 어쩌라고? 그러게 말이다. 이번에도 그저 그 사람을 만나기 전에 더 알고, 이해하고, 느껴가며 질문지를 짜는 것 말고 특별한 답은 없었다. 그래서 이 인터뷰가 좋은 인터뷰일지, 아닐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새 앨범이 나와서, 활동이 활발해서, 핫하니까 같은 으레 대는 이유가 아닌 단지 우리가 궁금하다는 원초적인 이유에서 여전히 추웠던 2월 끝자락에 서사무엘(Samuel Seo)을 만났다. 베일에 싸여 있는 아티스트는 아니지만, 왠지 포드주의식 Q&A는 하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에서랄까. 반대로 지금까지 다른 인터뷰이들이 그랬다는 건 아니고. 아무튼, 올해 정규 3집을 계획 중이라는 그의 삶과 음악 속 일부에 관해 상수동 이리카페에서 따뜻한 고구마 라떼를 휘휘 저어가며 이야기 나누고 왔다.




LE: 반갑습니다. 간단하게 힙합엘이 회원분들께 인사 부탁드릴게요.

S: 안녕하세요, 저는 서사무엘이고, 음악을 하고 있고, 3집을 준비하고 있고, 그냥 사는 사람입니다.





LE: 3집 앨범은 얼마나 진척되었나요?

노래는 한 200곡 조금 넘게 나왔는데, 추린 건 8, 9곡 정도에요. 지금까지 한 만큼 앞으로 더 써야 할 거 같아요.





LE: 1집 때도 300곡 이상 만드셨잖아요. 설마 완곡은 아니겠죠? (웃음)

보통 1차 본까지인 거죠. 저는 만들고 나서 한 번 들었을 때, 질릴 거 같으면 더 안 만들어요. 또, 실제로 내서 부를 때 안 쪽팔릴지 생각해요. 무엇보다 가사가 제일 중요한 거 같구요. ‘이게 난가?’ 생각해보는 거죠.





LE: 요새도 가사를 먼저 쓰시나요?

더 심해졌어요. 가사를 먼저 쓰고 막무가내로 녹음을 해요. 그 뒤에 악기를 입히다 보니 정해진 틀이 있는 상태로 곡을 쓰는 게 아니죠. 가면 갈수록 미디랑은 거리를 두고 싶어요. 필요할 땐 써야겠지만, 억지로 컴퓨터와 나를 섞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LE: 가끔가다 가사가 아까워서 다른 곡에 입힌 적은 없나요?

그런 적은 없어요. 필요성을 못 느꼈다고 할까요. 곡으로 볼 때는 웬만하면 다 살려보려고 하는데, 그래도 못 살리면 능력 부족이라 생각하고 버리거나 지워요. 가사야 새로 쓰면 되니까.





LE: 앨범을 준비 중이라고 하셨는데, 요새 어떻게 지내시나요? 시간이 지날수록 바쁘게 지내시겠다 싶기도 한데요.

일단 안 행복해요. 돈을 벌어도 하나도 안 행복해요. 예전에 ‘내가 음악으로 10만 원이라도 벌 수 있나?’라고 생각하고 전전긍긍할 때보다 상황은 낫죠. 그냥 남들 버는 만큼 벌면서 앞가림하는 정도인데, 그동안 바랐던 걸 이루니까 하나도 안 행복한 거죠. 정작 행복을 위해 중요한 건 다 놓치는 거 같고. 그래서 요즘 행복해지고 싶단 말을 입에 달고 살아요.





LE: 보편적인 시선에서 서사무엘 씨는 근 2, 3년 사이에 굉장히 잘된 편이잖아요. 그런데도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걸 보면, 본인만의 행복의 기준이 있으신 거 같아요.

실적은 나쁘지 않죠. 홍보에 돈을 많이 못 쓴 것치고는 잘됐죠. 근데, 이게 아마 김반장 형의 영향일 수도 있는데요. 형이랑 음악을 하면서 어떤 게 행복일까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눴거든요. 형은 공연 가서 취하는 태도가 남달라요. 기본적인 전제가 ‘나는 지금 일하러 가는 게 아냐’예요. 공연에 온 사람들이랑 좋은 시간을 보내고, 그 사람들한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하구요. 실제로 한 번은 공연하러 갔다가 하루 정도를 더 투자해서 좋은 시간을 보내더라구요. 저도 그런 게 좋은 거 아닐까 싶어요. 남들보다 많은 걸 쟁취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겠지만,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이미 많잖아요. 제 관심사는 그쪽이 아닌 거 같고,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면서 그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꾸고 싶어요.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면, 행복을 추구하는 씬 자체가 커지면서 그 안에서 나름의 새로운 수익 구조도 생기고, 돈을 벌 수 있는 공식에서 어느 정도는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게 되면 전 행복할 거 같아요.





LE: 행복감과는 별개로 스스로 옛날보다 성장했고, 자랐다는 건 느낄 거 같아요.

발톱의 때만큼도 원하는 걸 이루지 못한 거 같아요. 그게 물욕은 아닌 거 같구요. 저는 진짜 위대해지고 싶어요. (웃음) 그러기 위해서는 영향력이 생겨야 하고, 지금까지의 성장은 그 단계로 가기 위해 무조건 거쳐야 하는 순서 같아요. 큰 만큼 앞으로 더 커져서 발언권을 갖고 싶어요.





LE: 물욕은 아닌 거 같다고 하셨는데, 힙합의 큰 경향 중 하나가 물욕을 드러내고, 그걸 채워가며 과시하는 건데요. 그런 류의 음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멋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 씬이 주목받을 씬으로 여겨지고, 이만큼 커질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그들이 만들어 놓은 판에서 저도 돈을 벌고 있구요. 멋있는 무브인데, 동시에 왜곡만 되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어요. 자칫하면 다양성이 좁아진달까요? 누가 메이바흐(Maybach) 차 샀다고 하면 저까지 설레요. (전원 웃음) 외국에 누가 새집을 계약했는데, 그 집이 400평짜리 집이고 하면 ‘아, 씨 진짜 멋지네.’ 하죠. 근데 사람들이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걸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누리는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세상이잖아요. 그러니까 누리지 못한다고 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전 금전적인 도움은 되지 못할지라도, 그런 사람들을 위한 씬도 있었으면 좋겠고, 다들 다른 방면으로도 열린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LE: 아무튼, 서사무엘이라는 음악가는 개인 커리어로 보았을 때, 조금은 힘들고 애매했다고도 할 수 있는 2010년 전후보다 지금이 여러모로 나아진 거 같아요. 본인 스스로는 그때의 서사무엘을 어떻게 기억하나요?

좋았어요. 빅딜 스쿼드(Big Deal Squads, 이하 빅딜) 들어갔을 때는 랩 시작한 지 몇 개월 되지도 않아서 힙합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어요. 그냥 맹목적으로 멋있어 보이는 걸 다 빨아들이려고 하면서 나온 끔찍한 혼종이었죠. (전원 웃음) 근데 그 과정을 그때 안 거쳤으면 지금 거치고 있었을 거 같아요. 그때 그 모습도 저고, 저는 그때도 너무 좋아요.





LE: 빅딜 있지만, 그 당시 몸담았던 곳이 참 많았어요. 그래서 한 번 묶어서 여쭤보고 싶더라구요. 서사무엘에게 빅딜, 뉴블락베이비즈(New Block Babyz), 개릴라즈(Guereallaz), XVOI, 아싸 커뮤니케이션(ASSA Communication, 이하 아싸컴즈)는 각각 어떤 곳들인가요?

전부였죠. 저는 어디 들어갈 때마다 전부라 생각하고 접근하는 경향이 강한데요. 돌이켜보면 필요한 과정이었던 거 같아요. 제가 인생의 갈림길에 섰던 게 세 번이 있는데요. 한 번은 빅딜, 한 번은 군대, 한 번은 아싸컴즈 때였어요. 빅딜 때는 ‘랩은 섣불리 건드리면 안 되는 거구나’ 생각하면서 대학에서 (피아노) 연주자로 전향해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었구요. 군대 때는 직업 군인을 하려 했어요. 단기부터 시작해서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아 나가자고 생각했어요. 군대가 생각보다 잘 맞고 재미있었거든요. 특성상 일말의 갈굼은 있었지만, 지금 보면 좋은 기억이에요. 문신 때문에 좌절됐지만요. 그리고 아싸컴즈. 솔직히 아싸컴즈도 저에게 고마운 데인 게, 그때 누가 저한테 섣불리 손을 내밀어요. 아웃사이더(Outsider)라는 인물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비칠지는 제가 판단한 영역은 아니고, 저한테는 그냥 고마운 사람이에요. 근데 그때 음악은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나온 거죠. 당시에 목동에 있는 홍대 돈부리라는 데서 알바를 했었는데요. 사장님이 저한테 (음악으로) 미래가 안 보이면 자기가 넣어줄 테니까 그냥 주방 들어와서 칼 잡으라고 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었어요. 그러다 지금 회사인 크래프트 앤 준(Craft & June)에서 연락이 와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해보자고 했는데, 한국대중음악상을 받아버려서… ‘음악 안 하면 안 되겠네’ 했죠. (전원 웃음)





LE: 작품이 나올 때마다 거의 매번 어워드에 노미네이트되셨던 거 같아요. 그때마다 감회가 새로울 거 같기도 한데.

처음 한국대중음악상에 갔을 때는 되게 얼떨떨했어요. 신기한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극히 일부만 모인 걸 텐데도 우리나라에 음악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제가 여전히 작은 사람이란 걸 한 번 더 느꼈어요. ‘내가 저 사람들보다 뭐가 잘났다고 상을 왜 받지?’라는 생각이 되게 많이 들었어요. 열심히 해야겠다 싶더라구요. 저는 언제나 홍대 돈부리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전원 웃음) 음악 하면서 현물로 보상받은 적이 없으니까 동기부여가 엄청 많이 됐었죠.





LE: 물욕이 없다고 하셔서 눈에 보이는 실재하는 것에 관심이 없으신 거 같으면서도 상처럼 의미가 있는 현물에는 집요함 혹은 집착이 꽤 있으신 거 같네요.

어릴 때부터 유독 집착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런 건 가지고 싶어요. 제가 아우디라는 차를 처음 접한 게 캐나다에 살 때인데, 담임 선생님이 타고 다니던 차였어요. 그 사람은 저한테 너무 특별한 사람인 게, 공부가 즐거울 수 있게 만들어 준 첫 사람이었거든요. 방과 후에 친구들과 보드 타러 간다 하면 놀라고 하고. 그전까진 놀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런 기억이 있다 보니 아우디에 대한 집착이 꽤 있어요. BMW나 벤츠(Benz)에 비하면 접근성이 쉬운 브랜드일 수 있지만, 저한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거죠. 그 차를 타면 그때 그 선생님의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고. (상도) 그런 것과 엇비슷한 거죠.





LE: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가치가 높은 현물이라기보다는, 자기만의 의미가 있는 현물에 집착이 크다는 거네요.

그렇죠. 어릴 때, 일본에서 살던 그 집도 언젠가는 사고 싶어요. 저번 달에 다녀왔는데, 리모델링이 되어 있더라구요. 원래는 3층짜리 사택이었는데, 지금은 20층까지 올라가 있더라구요. 근데 집 안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 너무 좋은 거예요. 미니카 굴리면서 놀던 그때 그대로 남아 있어요. 다녔던 유치원도 보존되어 있고. 그런 어릴 때의 기억 중에서 돈으로 구할 수 있는 것들은 다 가지고 싶은 거 같아요.





LE: 지금 보면, 캐나다나 일본, 다른 나라에서 살았던 유년 시절이 창작 활동에 어떤 도움이나 영감을 주는 거 같나요?

음악적으로 영향을 끼친 건 사촌 형인 거 같아요. 이모부가 미 공군에 계시다가 갑자기 이모랑 국제결혼을 해서 사촌 형을 낳았는데, 그 형이 앨범 수집가였어요. 밴드 음악 한정이긴 했지만요. 형이 한국을 오든, 제가 형이 사는 곳으로 가든, 항상 저한테 이번엔 이 앨범을 듣자면서 앉혀 놓고 같이 들었어요. 주입식 밴드 음악 교육인 거죠. (전원 웃음) <카운터 스트라이크>도 한 열두 시간씩 하면서요. 그때 들었던 밴드 음악들이 지금도 오래 남고, 아직도 새롭게 다가와요. 원래는 메탈 보컬이 꿈이었으니까요.





LE: 본인 중심으로 밴드를 꾸릴 생각은 없나요?

하고 싶은데, 밴드를 하려면 제가 연주자들에게 동기부여가 될 만큼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저는 아직 그런 깊이 있는 음악가가 아니에요. 그 깊이를 갖추고 나서 자연스럽게 저랑 하고 싶게 만드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LE: 스스로는 컨트롤할 수 있는데, 더 큰 규모를 갖추기에는 성장이 더 필요하단 말로 이해할 수 있겠네요. 그래도 요즘 같이 밴드를 이루는 분들이 심상치 않은 분들로 알고 있어요. 괜찮으시다면 한 분 한 분 소개해주셔도 좋을 거 같아요.

엄청나죠. 기타리스트가 이태훈이라는 형이에요. 세컨 세션(Second Session)부터 시작해서 밴드를 여덟 개 정도 하는데요. 그 형이야말로 자아실현의 아이콘 같은 느낌? (웃음)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다 하는 데, 그런 연주자가 흔치 않은 거 같아요. 저는 자아가 강한 연주자가 좋거든요. 자아가 강해서 연주할 때 그게 녹아나는 사람들이 너무 좋은데, 태훈이 형이 그 대표적인 예에요. 건반에는 로스트리오(LosTrio)라는 재즈 밴드를 하는 오환희라는 형이 있어요. 몰랐는데 그 형은 가끔 파트 타임으로 교수도 한다고 하더라구요. 알고서 약간 불편해졌어요. (전원 웃음) 드럼은 최규철 형이 해주고 계세요. 원래는 댄서들이랑 같이 하는 드러머인데, 저는 그렇게 드럼을 체득한 사람을 많이 못 봤어요. 사실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학교, 학원 같은 데서 배워서 치는 게 아니라 진짜 체득해서 치는 연주자가 흔할 수가 없잖아요. 베이스는 김태헌이라는 형이 해주고 있어요. 그 형이 재미있는 게, 한동안 베이스를 치다가 베이스를 놓고 DJ를 했던 형이에요. 디스코, 하우스 쪽으로 많이 하고 그랬는데, 들어보니깐 저를 기점으로 다시 베이스를 잡은 거래요. 지금은 원 프로듀서 원 보컬 체제의 반도(Vando)라는 팀에서 프로듀싱을 맡고 있어요. 이렇게 자기 것이 뚜렷한 사람들을 모아 놨을 때 장점이 있는데요. 제 노래를 듣지 말라고 해요. 멜로디에만 맞게 마음대로 치라고 하면 자기들끼리 버무려서 완전 새로운 게 나오니까. 이게 너무 좋고, 그 안에서 저도 배우는 게 많아요. 그러니 앞으로도 그 형들과 같이할 수 있으면 좋을 거 같고, 노후를 책임지고 싶어요. 이럴 때 돈이 필요한 거 같아요. 솔직히 아직은 많이 드릴 수 있는 상태도 아니고, 저도 형들이랑 받는 게 크게 차이가 나지도 않고. 제가 저 스스로 몸값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해요.





LE: 각각이 아티스트인 연주자분들과 함께하는 걸 선호하신다고 보면 되겠네요.

네. 그리고 모였을 때 서로 재해석이 가능한 포맷이었으면 좋겠어요. 서사무엘이라는 테마로 그게 가능한 포메이션일 때 가장 행복할 거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이박사라는 사람이 멋있다고 생각해요. 그야말로 자유분방의 아이콘 같은 느낌이거든요. 나이 먹어서도 그런 에너지를 가지는 게 쉽지 않잖아요. 형식상 맞을 수가 없는데, 갑자기 ‘기타 한 번 신나게 비벼봐!’ 그런 거 있잖아요.(전원 웃음) 보는 사람 눈 땡그래지는 느낌. 그분은 자기 노래에서 벗어나서 연주자들한테 각자의 공간을 보장해줘서 멋있어요. 연주자들을 단순 세션으로 대하지 않고, 하나의 뮤지션으로 대하는 태도. 그 와중에 당혹스러워하는 표정도 봤지만요. (전원 웃음)





LE: 그럼 서사무엘 씨도 공연하실 때 연주자분들과 함께 즉흥적인 퍼포먼스를 하시나요?

저는 거의 매 공연이 즉흥적이에요. 연습할 때도 ‘이 노래 할 때는 이런 소리가 나오면 좋겠다’ 정도만 얘기해요. 라이브 할 때 정해 놓은 대로 간 적이 없어요. 그렇게 정해진 데로 안 가서 조명이나 무대 장치가 꼬여서 공연 기획자들한테 미안한 적도 있었어요. 그래서 이제는 최대치를 어느 정도 정해놓고 갈 생각인데, 그래도 여전히 어떤 날은 왠지 내 목소리보다 건반이 더 나왔으면 좋겠다 싶으면 하던 거 접고 넘겨 버려요. 아마 재즈 공연과 형식이 가장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잼하듯이, 서사무엘이라는 메인 팀이 있고, 나머지는 어디로 샐지 모르는 솔로인 거죠.





LE: 소위 행사라는 이름의 공연을 많이 하시는 분들은 셋이라는 게 정해져 있잖아요. 근데 그렇게 셋을 딱 짜놓고 진행하시는 걸 선호하시지 않겠네요.

선호하진 않는데, 그렇다고 그렇게 하는 분들의 무브가 싫은 건 아니에요. 그런 식으로 해서 잘하는 사람은 너무 많아요. 보는 사람 입장을 생각해 봤을 때, ‘굳이 나까지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그냥 내가 잘하는 거 하면 되지!’라는 생각이 커요. 대신 그런 건 있어요. 움직일 때 버짓이 너무 차이가 나요. 그들처럼 각 개인에게 페이가 가는 것과 저처럼 종합선물세트로 가는 경우에는 버짓 차이가 너무 심하거든요. 저희는 움직이기만 해도 200 뚝딱 나가거든요. 그 점에서 한계점이 있지만, 그래도 전 이게 좋아요. 사실 유명하지도 않은데, 밴드 데리고 다니는 거 자체가 되게 악수잖아요. 전 그러면서까지 보는 사람이 재미있었으면 좋겠어요. (웃음) 일단 제가 재미있고, 이렇게도 접근이 가능하단 걸 보여주고 싶고, 공연하는 음악가들에게 다양성을 더 열어주고 싶어요.





LE: 그럼 공연할 때마다 매번 어떤 새로운 걸 준비하나요?

카오스라고 하는데요. 막상 새로운 걸 준비해가면 항상 공연에서 별로였어요. 연습은 기본 루틴이 있어요. 루틴대로 하면서 ‘형들 대충 이쯤에 제가 할게요’ 이 정도만 얘기해놓고 나머지는 그냥 카오스. 현장 분위기에 맡기는 거예요.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거죠. 전 이제 자신이 있어서 그렇게 해도 못할 걱정은 없어요.





LE: 스테이지에서의 자신감 같은 건 많이 하면 할수록 붙지 않을까 싶은데요. 최근 들어 소같이 페스티벌이나 공연에 출연하셔서 자신감이 자연스럽게 생긴 걸까요?

저는 하드트레이닝의 끝판왕이에요. 스피커 안 켜지는 데서도 공연해봤고, 동남아 투어 때도 무리수가 좀 많았어요. 투어 돌면서 한 10 강화 정도 했어요. 풀 강화는 한 70까지 가야겠죠. (전원 웃음) 지금은 한 15 강화?





LE: 동남아 투어 포함해서 해외 공연 중에서는 어떤 공연이 제일 기억에 남나요?

홍콩. 제가 <클락켄플랍(Clockenflap)>이라는 페스티벌을 최근에 다녀 왔어요. 거긴 뭘 틀어도 음악이면 된다는 바이브에요. 우리나라는 ‘음악은 뭔가 꽂히는 라인이 있어야 해’라는 강박적인 정서가 있잖아요. 근데 (홍콩에서는) 그런 거 없이 그 자리에 어울리는 무드를 좀 더 중요시하는 거 같아서 심적으로 편안함이 느껴졌어요. 유명하든, 아니든 알 바 아니고 즐기는 거죠.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무서운 게 있어요. 페스티벌에 많이 서긴 했지만 제가 유명하지 않으니까 무대에 처음 올라갔을 때 제일 무서워요. 올라가면 몇백, 몇천 명의 눈에 물음표가 뜨거든요. ‘쟤 누구야?’인 거죠. 몇천 명이 있어도 그렇지 않고 다르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있다는 걸 느껴서 홍콩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좋다, 안 좋다는 개념보다 새로운 경험을 해서 좋았어요.





LE: 우리나라는 약간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라는 마음도 은근히 없지 않아 있죠.

저는 그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이 있으니까 지금처럼 발전했다고 생각해요. 동시에 위에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무섭기도 한 거죠. 그리고 관계자의 시선이 무서워요. ‘쟤를 데려다가 우리 어디다 내보낼 거냐, 말 거냐’ 같은 생각을 하며 보는 듯한 눈빛이라든지… 근데 ‘될놈될’이라고, 될 놈이면 되는 거고, 안 될 놈이면 안 될 거라고 생각해요.





LE: 그런 관계자의 시선이라든지, 음악 비즈니스 안에 있다 보면 음악을 예술임과 동시에 비즈니스로 인정해야 하는 순간들이 참 많잖아요. 그럴 때마다 아쉬움을 느끼진 않나요?
 
아니요. 저는 이제 그걸 적극적으로 이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에요. 옛날에 그렇게 하니까 남는 게 없더라구요. 돈 얘기는 아니구요. 오히려 그 두 가지를 나눠 놓고 잘 써먹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그라들지만 예술에 더 치중하고 싶으니까. 비즈니스 분야는 제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로 수발이 되어서 잘할 실무진, 저를 더 효과적으로 팔아줄 수 있는 사람이 중요한 거 같아요.




LE: 공연 얘기를 한창 했는데요. 돌아와 보면, 사람들이 서사무엘이란 뮤지션에 집중하기 시작한 건 확실히 [FRAMEWORKS] 때부터였던 거 같아요. 늘 변화해 왔지만, 그때쯤 스타일의 전체적인 노선이 정립된 거 같기도 하구요. 음악을 대하는 마인드셋이 바뀌어야 가능한 일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순정으로 돌아간 느낌이라고 하면 맞을 거 같아요. 그때가 아싸컴즈를 나오고, 요리를 할지 말지를 고민하던 때인데요. 생각했던 게, ‘내가 만약 음악을 다시 시작하면 예전처럼 객기에 차서 할 수 있을까?’였어요. 근데 ‘그 객기라는 게 나랑 잘 맞나?’라고 다시 생각해보니 하나도 안 맞는 거 같은 거예요. 그래서 앞으로 다시 음악을 하면 그냥 가감 없는 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그 앨범을 낼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예전에는 톤 같은 것도 만드는 건 줄 알았는데, 지금 보면 굳이 만들 필요도 없었던 거였어요. 그냥 있는 그대로 하는 거죠.





LE: 사실 [Welcome to my Zone] 때까지만 해도 어떻게 보면 과잉되고, 예전 스타일이 어느 정도 묻어 있는 편이었던 거 같은데요. 단순히 말하면, 당시 주류 힙합/알앤비 음악을 하려 했던 거 같았어요. 그러다 확 바뀌신 걸 보니까 어떤 계기가 있었겠다 싶어서요.

아니요. 계기는 없고, 그냥 다 내려놨던 거죠. 음악은 제일 X 같을 때 나온다는 말이 있잖아요. 가장 엿 같을 때 나온 생각들의 발현이었던 거 같아요. 그때는 아무 것도 하기 싫었고, 왜 사나 싶었거든요. 근데 지금이 그래요. 하나도 안 행복하고, 왜 살고, 왜 음악 하나 싶어요.





LE: 작품을 내놓는 거로 일종의 해소를 하는데, 새 작품을 준비 중인 터라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좀 다른 거 같아요. 해소할 방법은 찾았어요. 그 방법을 구현해줄 실무진을 비롯해 제가 할 수 없는 일말의 과정들을 대신해줄 수 있는 사람들은 있어요. 인프라는 생겼는데, 그것과 별개로 동기부여가 안 되는 시점인 거 같아요. 음악을 해서 남는 게 뭐가 있을까 싶고 그래요. 멋진 데 불려가고, 포토월 같은 데 서서 사진 찍고 다 좋은데, 제가 그리는 건 이런 게 아닌 거예요. 거기다 앞으로 더 유명해져서 올라갔을 때, 이런 게 더하면 더 했지, 적을 거 같지는 않은 거예요. 새로운 목표가 필요한 시점인 거 같아요.





LE: 예전 인터뷰에서 스스로 유리멘탈이라고 했더라구요. 근데 유리멘탈이라는 말보다는, 자극 하나하나에 반응이 비교적 민감한 편 같아 보이기도 해요. 감정도 확확 오고, 생각에도 깊게 빠지고. 예술가로서는 축복받았다 싶기도 한데요.
 
진짜 유리멘탈이긴 했어요. 하나하나에 진짜 엄청 크게 반응하는데, 그 반응이 안 좋은 쪽으로 발현되는 거 같아요. 뭐만 하면 ‘아, 다 때려치울까’, ‘나 왜 살지’, ‘나는 살 가치도 없는 인간인가 봐’ 막 이러고. (웃음) 아, 그리고 예전이랑 지금이랑 제일 다른 게, 요즘 작은 것에 둔해지더라구요. 그게 뭐냐면, 옛날에는 한없이 컸던 게 작게 느껴지고, 거기에 둔해지는 거죠. 그게 지속하다 보면, 나중에 제가 더 커졌을 때 또 어떤 작은 것을 느낄 수 없으면 어떡하지 싶어요.





LE: 어떻게 보면 작은 거에 둔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그 자체를 하다 보니 안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걸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그렇죠. 이런 건 되게 좋아요. 요즘 되게 신기한 게, 전 이해를 못 하는 것에 대한 경외심이 엄청난 사람이거든요. 단적인 예로, 책상 같은 물건도 제가 만들어 보기 전까지는 놀라운 거예요. 습관 중 하나가 다 부셔놓고 보는 건데, 이건 부실 수 없잖아요. 그래서 이게 어떻게 보면 한없이 작은 책상인데, 오히려 더 신기해요. 이런 작은 것들에 대해서는 경외심이 더 증폭돼요. 아, 어떻게 보면 부정에 둔해진 거 같아요. 소소한 것에 대해서는 신기해하고.





LE: 랩이나 보컬이라는 게 어떤 하나의 테크닉으로 정의되기도 하잖아요. 그걸 테크닉으로 받아들이고 연마한다는 개념으로 보시는 분들도 있는데, 서사무엘 씨 같은 경우에는 멀리서 보았을 때 그런 테크닉적인 방법론으로 랩이나 보컬에 접근하실 거 같지는 않고, 그래서 어쩌면 지금의 문제가 테크닉적으로 접근하면 풀릴 수 있는 문제일지도 모르겠어요.

별 생각은 없는 거 같아요. 그냥 하다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근데 일단 악기 연주 분야는 제가 전공을 했기 때문에 그들이 그 연주를 하기 위해 뭘 갈고 닦는지 현장을 본 입장에서 예전에는 제 손으로 그걸 다 하고 싶었어요. 지금은 그게 어떻게 구현되는지 알고, 이해를 한 상태에서 저보다 잘하는 사람이랑 협업을 하고 싶어요. 목소리 같은 경우는 (테크닉적으로 발전시키고 싶은) 욕심 있죠. 근데 어느 정도만 닦아놓고 하면 그때부터는 큰 욕심이 없을 거 같아요. 길만 터놓는다고 하죠. 그다음부터는 사실 누가 저를 더 안 건드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커요. 왜냐하면, 인간이 맨 처음에 음악을 할 때, 그들이 누가 가르쳐줘서 한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기초, 기본만 명확하고, 자아가 98% 개입한 음악은 어떤 음악일지에 대한 생각이 되게 커요.





LE: 서사무엘 씨가 보편적인 기준에서 피아노 연주 실력이 뛰어나다고 알고 있는데요. 연주자로서 이만큼의 탤런트가 있다는 걸 라이브 클립이라든가, 여러 곳에서 대외적으로 보이는 것도 아티스트로서 가질 수 있는 메리트가 아닐까 싶은데요.

그게 -ed에요. 지금은 피아노를 붙잡고 연습하는 시간보다 마이크 잡고 앞에 나서는 시간이 더 기니까 그쪽으로만 더 생각하게 되지, 연주로는 더 욕심이 없는 거 같아요. 나이 먹고 자아실현 정도? 예전에 언제 한 번 제가 연주하는 걸 누가 찍어서 네이버 메인에도 올라가고 그랬었거든요. “1분 30초”라는 노래였는데, 그게 딱 10년 전, 18살 때에요. (겉으로 내보이면) 메리트이긴 한데, 제가 만족을 못 하겠어요. 물론,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 그런 식으로 콘텐츠를 하나씩 더 불리면 좋은 거 알아요. 전 얼마든지 눈속임을 할 자신이 있어요. 잘 속여서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듯 어필할 자신이 있는데, ‘굳이? 내가 만족을 못 하는데?’라는 생각을 되게 많이 해요.





LE: 작품을 내는 형태를 보면 자유로운 예술을 추구하는 거 같으면서도 꽤나 계획적일 거 같기도 해요. 싱글을 선공개하는 식으로 내는 것도 아니고, 싱글은 싱글대로, 앨범은 또 앨범대로 어떤 핏함이 있는 거 같아요. 

작품의 매무새에 신경을 쓴다고 쓰는데, 지금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매번 낼 때마다 배우는 거 같아서 그게 너무 짜증 나요. 뭐가 짜증 나냐면, 똑같이 만들어놓고 똑같이 낸 건데 왜 이때는 그 생각을 못 했나 싶을 때가 많아요. 그래서 앞으로는 모의 발매라는 걸 해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주변 지인들한테만 들려주는 식으로 모의 발매를 하는 건데, 피드백을 위해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정말 냈다는 의미 하나만 가지고서 제가 그다음에 어떤 생각이 들고 고민이 들까 싶어요.





LE: 스스로 평가하기에 작년에 발표한 [Elbow]나 “Off You”는 어떤가요?

“Off You”는 말 그대로 진짜 쉬는 시간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 노래는 쓰기 전날에 간만에 술집에 간 것뿐이었고, ‘오오~ 저런 여자가 있다’, ‘와아~ 마음에 드는 이성이다’ 하고… (웃음) 그래서 그 곡에 어떤 작품적 가치를 부여한다기보다 그저 좋은 쉬는 시간이었다는 거죠. 반면에 [Elbow]는, 번뇌와 고통의 연속이었어요. 왜냐하면, 작업이라는 게 여러 명이 함께할 때 각자가 키를 쥐고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한 명이 키를 잡은 상태에서 각자의 의견이 공존했을 때 새로운 무언가가 나오는 게 더 순탄한 작업이라고 봐요. 이번 ([Elbow]) 작업의 키는 아일이 형(김아일, Isle Qim)한테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전 그러길 원했어요. 서사무엘이 키를 잡고 있으면 문제가 생기는 게, 제가 하던 거에서 크게 변하지 않을 거 같은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아일이 형이 키를 잡고, 그의 주도하에 뭔가를 진행했을 때 어떤 게 나올지 궁금했었는데, 막상 닥쳐보니까 안 하던 거라서 너무 어려운 거예요. 귀는 너무 즐겁고, 미쳤는데… “Monk” 같은 건 제가 서사무엘 이름만 걸고 내라고 하면 죽어도 못 내거든요. 그 앨범은 모든 게 새로웠고, 약간 초심으로 돌아가게 해주는 느낌의 앨범인 거 같아요. 무엇보다도 잠적해 있던 김아일을 제가 리바이브시킨 느낌이라서 너무 좋았어요.





LE: “Mango”는 뮤직비디오가 독특하잖아요.

구현을 잘 해준 네버마인드(Nevermind)라는 팀, 이 팀이랑은 끝까지 가지 않을까 싶은데요. 뮤직비디오 자체와는 별개로 너무 아쉬워요. 원래 그 영상이 끝이 아니에요. 저희가 제안서를 엄청 넣어 놨었어요. 근데 생각해보면 힙합엘이에서 약간 멱살 잡고 캐리해준 게 뭐냐면, 그래도 사이트 플랫폼에서 보이게끔 하는 걸 구현하게 해주셨어요. 원래는 못 해도 한 20여 개 사이트에서는 연동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되게 많이 했어요. 애초에 [Elbow]라는 프로젝트가 뭐냐면, 의미 자체가 (팔꿈치가) 퇴보 빼고 다 된다는 거잖아요. 다양성을 모티브로 잡고 이야기했을 때, 떠올랐던 거였죠. 그 다양성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플랫폼이 더 있었으면 했는데, 그게 실현되지 않아서 너무 아쉬웠어요. 그게 아니었다면 뮤직비디오를 흑백에 크로마키를 위한 최상의 조건으로 찍었을까 생각도 했어요. 이럴 때 또 제 한계를 느끼죠. 인지도라든지… 만약에 퍼렐(Pharrell)이 했으면 그랬을까 싶고.




LE: “Mango” 뮤직비디오는 기본적으로 거의 무채색이긴 했지만, 항상 색이란 걸 잘 활용하시는 거 같아요. 색채에 관해 공부를 하셨었나 싶기도 했어요. 색에 대한 일종의 또 다른 집착이 있으신가 싶어서요.

(집착) 심하죠. 근데 “Mango”는 아쉬운 게, 그 뮤직비디오에서의 색은 웹사이트였어요. 다른 웹사이트들. 아무튼, 색에 대해 또 막 생각이 많지는 않은 게, 무슨 노래를 들으면 이거 무슨 색인 거 같다고 생각하잖아요. 대신 그런 생각은 좀 있어요. 내 음악을 들었을 때 네온 톤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되게 많이 해요. 그 네온 톤이라는 게, 너무 화려하고 멋진 거죠. 그것보다는 담백함이 모여서 나오는 멋짐이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이 커요. 굳이 화려하게 안 해도 멋진데, 더 멋지려고 하면서 ‘여러분, 전 이렇게 멋있습니다.’ 이런 것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이에요.





LE: 새롭게 준비 중이신 앨범은 어떤 색깔인가요?

갈색. 갈색이고, 진짜 담백하게 좋아요. 제가 들어도 좋아요. 아마 안 될 거고 내고 나서 ‘아, 이거 아닌 거 같은데.’라고 생각하겠지만, 3집이 원하는 대로 구현만 되면 한동안 그만한 건 안 나올 거 같아요. 근데 아직 곡도 다 안 나와서요. 다만, 기승전결에 더 중점을 두려고 해요. 그 언제보다 뚜렷하게 꽂힌 테마가 있어서 그걸 구체화하려면 앨범의 기승전결이 엄청 완벽하게 짜여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서요. 피처링 일체 쓸 생각 없고, 혼자서 잘 끌어나가야 하는데 책처럼 잡아 나가면서 만들어 가야 하니까 어려워요.





LE: 항상 작품 자체도 당연히 신경 쓰지만, 그걸 비주얼적으로 보여줄 때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까, 어떤 식으로 보여줘야 가장 효과적일까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시는 거 같아요.

고민하죠. 고민하는데, 이건 연륜이 필요해요. 아직 연륜이 덜 쌓여서 쌓아 나가는 과정이구요. 지금은 뭔가 약간 장난치는 거 같아요. 내가 무슨 조예가 있겠나 이런 생각으로 섣불리 다가서는 감도 있고. 근데 하고 싶은 욕심은 있고 하니까 더 공부를 많이 해보려고 하는 건 사실이죠. 더 많이 알아가는 과정이에요.





LE: [FRAMEWORKS] 때는 페이스페인팅을 하셨잖아요. 그것도 역시나 깊이라기보다는 어떤 재기가 보이는 작업이었던 거 같아요.

그건, 원래 계획에 없었던 거였어요. 저만의 의미 부여인데요. ‘FRAMEWORKS’라는 앨범 제목을 지었을 때, 무슨 프레임인지를 생각했어요. ‘난 그냥 내 삶을 살아가니까 내가 액자가 되어야겠다’ 이것밖에 없었어요. 잘 보면 (각 페이스페인팅 안에) 스토리가 있어요. 그걸 최민석이라는 친구가 구현을 잘해준 거죠. 그리고 앨범도 원래는 나무로 제작하려고 했었어요. 나무 액자를 만들어서 한정 판매하려고 했는데, 제작 단가가 너무 세지다 보니까 100장을 찍으면 총 제작 비용보다도 웃돌 수 있겠더라구요. 그래서 잘 만들 거 아니면 그냥 우리가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최선을 뽑자고 했죠.





LE: 보통 그런 비주얼적인 아이디어는 본인이 내는 편인가요?

얘기를 되게 많이 하죠. 누가 했다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얘기를 되게 많이 해요. 근데 그때마다 누구랑 얘기하느냐가 가장 크게 작용해요. 근데 그렇게 얘기를 할 수 있게끔 사고를 바꿔준 사람이 이승준이에요. 크래프트 앤 준(Craft & June)에서 비주얼 디렉터를 담당하다가 지금은 사업을 시작한 형이에요. 그 형이 보는 관점이 (저한테) 옮은 거 같아요. 항상 사람은 대화하는 존재라고, 대화를 해서 뭐든 배울 게 분명히 있다고. 저는 원래 숫기가 있는 편이 아니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편해요. 아무 데나 가서도 인사하고 얘기 나누고. 그 과정에서 아직 같이 작업을 하진 않았지만, 너무 멋진 사람들을 많이 알았어요. 특히, 옷 하는 사람들한테 많이 얻는 거 같아요. 그들이 바라보는 음악에 대한 관점은 이렇게 다르다는 걸 느끼기도 하고.





LE: 왠지 요즘은 래퍼분들이나 힙합 씬에 있는 분들보다 그렇지 않은 분들을 더 많이 만나실 거 같아요. 음악가가 아닌 분들이라든지.

그렇죠. 레지스탕스(Resistance)라는 브랜드가 있어요. 그전에도 많은 브랜드랑 얘기 나눴죠. 아무것도 없었을 때, LMC에서 저한테 시딩해준다고 했을 때를 기점으로 지금 레지스탕스라는 브랜드를 제가 직접 가서 컨택하고, 이 사람이랑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고 느끼기까지 너무 많은 일이 있었어요. 그리고 어떻게 보면 이들이 비주얼적으로 앞서 나가 있어야 하는 직종의 사람들이잖아요. 판매고, 실적으로 바로 연결되는 옷이니까요. 이 사람들이 보는 게 결국에는 언젠가 음악으로 흘러 들어오더라구요.

음악은 구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지금 저한테 필요한 건 음악적 동료도 중요하지만, 제 음악을 손대가며 합작할 사람이 아니라 저를 가져다가 구현해줄 사람인 거 같아요. 그래서 최근에 컨택한 레지스탕스 그 친구들은 알고 보니 나이도 저랑 똑같았는데, 타겟층이 주로 국외 쪽이에요. 보면 재미있어요.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하려 하고, 룩북에서 그들의 철학이 많이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룩북 하나 찍더라도 열과 성을 다해서 어떻게 하면 새로운 그림이 나올까 고민하고… 알고 지내는 것만으로도 좋은 영감이 되는 거 같아요.





LE: 서사무엘 씨는 패션지, 라이프스타일지 같은 계열에서 팬시하게 소비되기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계신 거 같아요. 이를테면, 에이셉 라키(A$AP Rocky) 같은 존재라고 할 수도 있겠죠. 혹시 그런 쪽으로 소비되는 데에도 니즈가 많이 있으신 편인가요?

피사체로서의 니즈는 항상 있는 거 같아요. 근데 제가 좀 많이 거절해요. 본업이 아니기 때문에. 에이셉 라키는 사실 말할 필요도 없이 너무 스타잖아요. 음악으로 한 가닥하고 어느 정도의 영향력이 생긴 상태에서 다른 걸 했을 때 설득력이 있다고 보거든요. 한동안 그게 주객이 전도됐다 싶을 정도일 때가 있었어요. ‘내가 이렇게 잡지 화보를 찍을 때가 아닌데’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음악에 좀 더 집중해서 자리를 잡고 하고 싶어요. 물론, 지금도 그쪽으로 발전하기 위해서 항상 고민하고, 주변에 모델 친구들 만나서 계속 얘기해요. 엄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LE: 예전에는 성격이 되게 소심하고, 폐쇄적이었던 거로 알고 있어요. 그러다 군대라든지, 이승준 씨를 만나면서라든지 어떤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지금은 본인의 모습을 드러내는 데에 거리낌이 없어진 거라고 봐야 할까요?

모르겠어요. 제가 항상 마음속에 담아놓고 사는 문장이 있어요. ‘생각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기분이 좋을 거 같아’, ‘기분이 안 좋을 일이 일어날 거 같아’라고 생각이 들었을 때, 그 문장을 생각하면 속이 편해지더라구요. 이 사람이 나를 안 좋게 보지 않을지 생각하기 전에 생각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해버리면 ‘어쩌라고’가 되더라구요. (웃음) 되게 많이 초연해졌어요.





LE: 예전에 <싱스트리트>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도 나오셨던 걸 보면, 방송계 쪽으로도 비슷한 방식으로 소비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계신 거 같아요. 그런 방송 쪽으로도 서사무엘이 어떤 캐릭터가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니즈 같은 게 있으신가 싶더라구요.

사는 게 재미있는 게 그런 거죠. 당장 한 시간 후에 뭐할지도 모르는데. 니즈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시켜주면 재미있죠. 시켜줄지 안 시켜줄지 모르는데. 그렇기 때문에 일단 흐르는 대로 가는 거고, 또 하게 되면 충분히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싱스트리트> 당시에는 스케치북 보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되게 어렵다, 괜히 전쟁터라고 하는 게 아니구나 생각 많이 했었어요.





LE: 방송계 장난 아니죠. (웃음) 계속 서사무엘 씨가 엔터테인먼트 계에서 소비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전제하에 얘기를 좀 해봤는데요. 아무래도 음악적으로 여러 가지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크게 한몫하는 거 같아요. 그만큼 서사무엘 씨의 음악을 두고 많은 분들이 갖가지 수식어를 붙이곤 해요. 특히나 이건 힙합이다, 알앤비다, 일렉트로-펑크적인 색깔이 있다, 신스팝의 색채가 느껴진다 등등 장르적으로 이야기를 많이 하곤 하는데요. 자신의 음악을 그렇게 규정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되게 좋아요. 왜냐하면, 전 생각은 안 하고 만드니까 잘 모르잖아요. 어떻게든 정의 내려질 수 있는 카테고리가 있다는 게 고마워요. 몰랐던 걸 알게 되면서 배우기도 하구요. 그러면서 더 커지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 그런 건 있어요. 기자분이 ‘힙합의 귀재’ 이런 식으로 내보내려고 하신 적이 있는데, 그럴 때는 제가 거절하죠. 사람들이 아무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정의를 내리게 하고 싶지, 색안경을 낀 채로 저를 정의 내리게 하고 싶지는 않은 거예요. 아까 같은 그런 타이틀을 보고서 제 음악을 들었을 때, 듣는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할 거 같아요.





LE: 장르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 했지만, 레퍼런스가 주어지는 외부 작업 같은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그런 부분을 고려해야 할 거 같기도 한데요. 특별히 어떤 본인만의 대처법이랄 게 있을까요? 일단 전지윤, 박보람 씨와의 작업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요.

다 재미있었어요. 좋게 얘기하는 게 아니고, 너무 재미있었던 게 냉정하게 제 손으로 그런 걸 못 만들거든요. “Cliché” 같은 경우에는 지윤이 누나랑 할 때 하다 하다 잘 안 나와서 악기 연주자분들을 스튜디오에 안에 다 모아놓고 진행해서 하루 만에 나왔어요. 여기서 안 나오면 그냥 안 나오는 거라는 생각으로. 그 곡은 오히려 누나의 기운도, 제 기운도 아니게 나온 느낌이구요. 보람이랑 한 건, 그거야말로 가이드라인이 명확했죠. 처음에는 그 벌스 짤렸었어요. 너무 강하고, 조금 더 협의가 가능한 여지가 있었으면 한다고. 아무튼, 그냥 재밌었고 좋았어요.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해보겠나 싶었고. 되려 보람이나 지윤이 누나 같이 어떻게 보면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스타들 입장에서 저 같은 사람이랑 협업을 하기가 굉장히 모험일 수가 있다는 생각을 했었죠. 근데 그걸 감내하고서 저랑 하기로 했으면 저도 그들에게 니즈를 맞출 필요가 있다고 봤었죠.




LE: 박보람, 전지윤 같은 분들과도 콜라보하셨지만, 기본적으로는 그간 흑인음악이라는 범주 내에 속해 있는 래퍼 분들을 비롯한 아티스트들과 콜라보를 많이 하신 거 같아요. 혹 최근에 콜라보하면 좋겠다 생각이 든 다른 장르, 다른 스타일, 다른 결의 아티스트가 있을까요?

전혀 없어요. 근데 제가 요새 발견을 늦게 하는 게 너무 한인데요. 날치와 두루미라고 있어요. 행위 예술하시는 분들인 거 같은데, 오히려 그런 분들을 만나고 싶어요. 음악으로는 솔직히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어요. 그분들은 보고 있으면 진짜 같이 하고 싶어져요. 길거리에 몇 시간씩 서서 뭘 하는데, 그게 뭘 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되는데 만나서 얘기 들어보고 싶어요. 일반적인 테두리에서 벗어나 있는 경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저 같은 사람이랑 접촉하는 걸 안 좋아할 수도 있다는 주변 사람들의 견해도 조금 있더라구요. 그래서 섣불리 접근하지 못하고 오늘에서야 인스타그램 계정 없어져 있는 거 확인하고… 언젠가 연이 닿으면 어떻게든 보겠죠. 볼 사람은 보니까요.

그리고 음악하는 분들이랑은 음악을 같이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에티튜드를 보면서 배우고 싶어요. 얼마 전에 오케이션(Okasian) 형을 만났는데, 처음 만나는 자리였어요. 진짜 멋있더라구요. 다음 앨범 노래를 들려주는데, 자기 것에 대한 프라이드가 느껴짐과 동시에 거기에서 즐거움을 찾고, 그 즐거움에 어떠한 가식도 없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왜냐하면, 저는 처음에 그 형이 무서울 줄 알았거든요. 근데 여태까지 만났던 사람들 중에 가장 가식 없는 느낌. 그런 식의 예상치 못한 사람에게서 받는 에티튜드적인 감동이 큰 거 같아요. 아직까지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열려 있다 싶어요. 최근에 생긴 친구 중에는 태현이도 있어요. 남태현. 걔도 진짜 멋진 거 같아요. 걔랑 저랑 장르로 놓고 봤을 때 그렇게 겹칠 일이 없었잖아요.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상상도 안 했고. 저런 사람이 있나 보다 했었는데, 만났을 때 의외로 미친 듯이 오픈되어 있고 가식이 없는 데다 생각보다 음악에 대한 고민을 미친 듯이 하고 있더라구요. 무엇보다 차별이 없는 느낌? 좋은 친구에요.





LE: 정말 의외의 인연이긴 하네요. 앞서 나 혼자서는 못 냈을 노래가 “Monk”라고 해주셨었는데요. 전설적인 재즈 피아니스트 델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의 이름에서 제목을 따온 거로 알고 있어요. 가사에서는 전설이 되고 싶다고 외치기도 하는데, 위대해지고 싶다는 말씀도 하셨으니 묻고 싶은데요. 서사무엘 씨가 그리는 전설적인 인물로서의 이상향은 어떤 건가요?

그걸 모르겠어요. 진짜 모르겠는데, 몰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제가 어떻게 커질 줄 모르니까. 근데 그 전제는 위대해지고 싶다는 거고. 그렇게 될 거라는 데에 어느 정도 확신도 있구요. 그리고 아일이 형이 제가 만난 사람 중에 제일 중요한 사람인 게, 그 형이 바늘 같은 사람이거든요. 사람 가려운 데 잘 긁고 잘 찔러요. 그 형이 이 노래 그냥 아무 말 다 쓰자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오케이하고, 아무 생각 없이 적은 거예요. 그게 좋았어요.





LE: 그럼 그 전설에 제일 가깝다고 생각하는 모델은 있을까요?

그것도 아직은 모르겠어요. 왜, 전설이 살아 있다는 명제 자체가 잘못되어 있는 거잖아요. 보통은 사후에 어떠한 기록으로 그 사람이 회자되면서 전설이 되니까요. 죽은 사람까지 넓혀서 보면 너무 많구요. 거기까지 가서 찾고 싶지는 않고, 살아 있어야 해. (웃음)





LE: 예전에는 릴 웨인(Lil Wayne)이 굉장한 영감을 주는 대상으로 삼았던 거로 알고 있는데요. 요즘은 어떤가요?

여전히 엄청 멋있죠. 저 멀리 지구 반대편에 있지만, 접점이 은근히 많아요. 스케이트보드에 대한 사랑이 엄청나고… 전 왜 그 사람이 왜 스케이트보드에 꽂혔는지 모르겠는데, 그렇게 된 시점이 27.5세였단 말이에요. 저는 27살부터 보드를 타기 시작해서 그렇게 단기간에 실력이 느는 사람을 본 적이 없거든요. 그 열정이 대단하고, 자기가 사랑하는 문화에 아낌없이 서포트하는 에티튜드 자체가 너무 멋있다고 생각해요. 래퍼로서의 릴 웨인은 예전만큼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어요. 근데 사람으로서는 지금 너무 멋있어요. 대신 그런 건 좀 있었던 거 같아요. 릴 웨인이기 때문에 스케이트보드 씬에서 쉽게 받아주고, 프로들이 같이 타주고. 릴 웨인이 보드 타는 걸 보고 있으면 그 사람이 음악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가 느껴져요. 스케이트보드라는 장르가 웬만한 노력 아니고서는 힘든 장르라고 생각해요. 저도 다리가 부러져 가면서 타 봤었고, 어느 정도 높이에서 뛰느냐, 어디에서 무슨 레일을 타느냐에 따라 그게 얼마나 무서운지도 알거든요. 릴 웨인은 그 짧은 시간 안에 할 수 없는 걸 해낸 거예요. 저 사람은 저래서 되는 거다, 저렇게 살아야지 진짜 멋진 거라고 느끼는 거죠.





LE: 릴 웨인이 예전에 성실하다 못해 참 과하다 싶을 정도로 허슬을 했잖아요. 생각해 보건대, 전설이 되기 위한 조건 중 하나는 성실함이 아닌가 싶어요. 그 점에서 서사무엘 씨는 그 조건을 충족하고도 남는 아티스트가 아닐까 싶어요. 비결이랄 게 있을까요?

멀었어요. 그게 자존감이 낮아서 가능한 거 같아요. 왜냐하면, 뭘 해도 ‘아, 한참 멀었네’ 이 생각을 전제로 하고, 뭘 쓰고 만들고 나서도 구린 부분이 제일 먼저 떠올라요. 끝없는 불만, 그게 제일 큰 거 같아요. 그리고 내가 아는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게 단 하나도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빡세게 해야 평타라도 간다 이런 느낌이에요. 근데 자존감은 낮되, 자신감은 그에 비해서 엄청 높은 거 같아요. 이게 무슨 이상한 상황이지 싶은데, 그 와중에도 자존감이라는 게 어느 정도 있으니까 이 말을 이렇게 하는 거겠죠. 아무튼, 솔직히 자신은 있어요.





LE: 서사무엘 씨 음악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에 대한 이야기를 참 많이 한다 싶더라구요. 어떤 뮤지션도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유독 ‘나’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서 집중하는 이유랄 게 따로 있을까요?

뭐든 자아 성찰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나를 모르는데 다른 걸 어떻게 얘기하나 이런 생각이에요. 전제가 항상 그렇게 깔려 있어서 모든 게 저 위주로 가는 거 같아요. 가사를 쓸 때 습관적으로 ‘난’부터 시작하는데, 거기서 잘 못 벗어나는 거 같아요. 어떻게 보면 양날의 검인 거 같아요. 나에 관해서 얘기하는 게 좋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다른 걸 얘기하지 못한다는 걸 수도 있으니까요. 근데 지금 생각은 나를 먼저 얘기할 수 있게 되면 다른 걸 더 편하게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정도에요. 아직은 나에 좀 더 포커스를 두고 싶어요.





LE: 그런 성향이 종종 지겹게 다가올 때는 없나요? 너무 나에 관해서만 이야기하나 싶어서.

아뇨. 전 제가 되게 좋은 게, 덕질을 해도 나를 덕질하는 게 제일 행복해요. 웹툰만 봐도 그렇잖아요. 전 혼자 대화하는 걸 되게 좋아해요. ‘다음 노래 언제 나와?’라고 물어봤을 때, 즉각 대답할 수 있잖아요. ‘작업 중이고, 들려줄게.’ 이런 느낌. 연장선인 거 같아요. 나한테 제일 많이 소재가 나오고, 나는 계속 변하니까요. 소재가 고갈될 일도 없구요. 그래서 나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건 죽을 때까지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LE: 그럼 인생에서 나를 제외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 바깥의 외부 세계에 관해서 이야기한다면 어떤 것에 관해 가장 많이 이야기할 거 같나요?

제 주변이겠죠. 근데 항상 ‘기승전 나’가 될 거 같아요. 새 앨범 같은 경우에는 (내 안의) 심연의 끝이에요. (웃음)





LE: 2018년의 서사무엘, 앞으로의 서사무엘은 어떻게 될까요?

2018년에는 3집이 나오고, 다른 건 모르겠어요. 앨범이 나왔을 때 들어도 되고 안 들어도 돼요. 근데 상품적인 가치로서의 음악이 되게 많잖아요. 그 안에서 같이 늙고 싶은 음악을 하고 싶어요. 다른 거 듣다가 질리면 나랑 넉살 들어라. 그러면 될 거 같아요. 중간에 이벤트성으로 다른 것도 조금씩 하겠지만, 결국에는 그런 음악을 하고 싶어요.


1.jpg



인터뷰 | Melo, Geda, bluc
사진 | 크래프트 앤 준 제공


신고
댓글 12
  • 되게 힘들어 보이신다...
  • 3.17 16:31
    되게 좋아합니다. 이런 응원이 도움이되련지 모르겠으나, 앞으로도 좋은음악 많이 듣고싶습니다.
  • 3.17 18:39
    진짜 사람으로써 너무 맘에드는사람이다 물론 음악도
  • 3.17 19:51
    지금 당신이 제일 멋져요
    짱이야 한국 흑인음악 씬에서 제일 멋짐
    어쩌면 한국 음악씬에서 젤 멋진 사람중에 하나에요
    화이팅
  • 진짜 존좋 아티스트. 3집 너무 기대되고 인터뷰한 말들 몇몇이 인상깊네여. 

    요즘 근데 김아일은 뭐할라나 ㅜ

  • 3.20 01:30
    음악가로써 태도가 정말 멋있으세요.
  • 3.20 20:58
    인터뷰 읽으면서 생각하는게 평소 저랑 너무 똑같애서 소름 돋았네요
    종사하는 분야는 전혀 다른지만요
    제대로 서사무엘 음악 들어본적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들어봐야겠어요ㅋㅋ
  • 3.29 07:58
    사랑한다 서사무엘ㅜ
  • 3.29 15:39
    언급한 행위예술하는 분들 두루미와 날치인듯
  • 3.29 20:02
    물론,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 그런 식으로 콘텐츠를 하나씩 더 불리면 좋은 거 알아요. 전 얼마든지 눈속임을 할 자신이 있어요. 잘 속여서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듯 어필할 자신이 있는데, ‘굳이? 내가 만족을 못 하는데?’라는 생각을 되게 많이 해요.

    멋있네요 3집 기대하겠습니다 이번에도 예구!
  • 4.4 13:42
    친구하고싶다
  • 4.19 00:25
    아 서사무엘 개좋아 갠적으로 우리나라 뮤지션 top10안에 든다고 생각할정도로 좋음 2집 잘들었는데 3집도 기대할게용 하트하트하트하트

댓글 달기